프랑스 학자가 바라본 한국의 아파트
국제적으로 아파트는 주로 하류층의 거주지이자 ‘도시폭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해외에서는 저소득층에게 일정 수준의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아파트가 개발되었다. 즉, 아파트는 ‘평등’을 위한 사회시설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파트는 중산층이 거주하는 곳이자 경제적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차이’와 ‘신분’을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많이 다르다.
독재정권과 아파트
한국에서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시기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중공업 발전과 도시화, 산업화를 내세웠고, 이 과정에서 여의도와 강남개발계획이 시작됐다. 한국의 아파트는 애초에 서민을 위한 저가 주거시설이 아니었다. 오히려 양질의 주거환경을 제공하여 국가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활용되었다.
‘빠른 현대화’를 강조하던 독재정권에게 아파트 개발은 도시화를 빠르고 저렴하게 이룰 수 있는 수단이었다. 1964년 마포아파트 준공식에서 박정희는 “우리나라 고래의 고식적이고 봉건적인 생활양식에서 탈피하여 현대적 집단 공동 생활양식을 취함으로써, 경제·시간적으로 큰 절감을 가져와 국민 생활과 문화가 향상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재벌들도 아파트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부족한 일감을 아파트 건설로 채울 수 있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건설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현대, 삼성 등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아파트 개발로 중요한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파트와 중산층
연탄 난방이 일반적이던 시절, 아파트 단지의 중앙난방 시스템은 중산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파트는 ‘현대적’이며 ‘최신’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오늘날에도 브랜드 아파트들이 첨단기술과 편의성을 강조하는 것과 동일하다), 경비원(저자는 이를 ‘하인’의 역할이라 지칭) 등 안전·편의서비스도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건 서울의 주요 중·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한 일이었다. 자녀교육에 모든 걸 쏟아붓는 한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정책이었다.
아파트가 양질의 주거환경이라는 이미지가 자리잡으면서 가격은 끊임없이 상승했고, 이를 통해 자산을 불린 중산층이 등장했다.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곧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아파트는 ‘도시적이고’, ‘최신’이며, ‘중상류층’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한 아파트를 통해 중산층으로 올라선 사람들은 보수정권의 주요 지지층이 되었다. 독재정권으로부터 경제적 혜택을 받은 중산층은,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던 정권의 든든한 지지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이를 보수정권의 ‘계획과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정권이 수차례 바뀐 현재까지도 주택정책은 지지층을 방어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핵심적인 정치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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