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역사,전쟁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 1 (유럽, 이슬람)

btpoint 2024. 6. 27. 14:51

오늘의 세상을 설계한 사람 중에 하나인 미국의 책사 헨리 키신저의 책.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각국에 대한 왜곡된 편향을 음미하다보면 느껴지는 역겨운 감정이 이 책의 백미다.

유럽

합스부르크 왕조의 카를5세
신성로마제국은 느슨한 연합체로 '신성'한 적도, '제국'인 적도 없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카를5세는 황제다운 힘을 가진 신성로마제국 최초의 군주였으나, 그는 제왕이 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았다. 카를5세는 오히려 연합체를 분리하고 권력을 이양한다.
 
프랑스의 책사 리슐리외 추기경
프랑스의 세력균형에 기반한 대외정책을 만든 천재(프랑스 재상: 1624-1642) . 세력균형을 이루기 위한 그의 전략 전술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장기적인 전략 2) 결단력 3) 가능성의 경계선(허황된 포부와 현실의 경계) 
 
30년 전쟁
대항해시대, 인쇄술의 발전, 신교(청교도)의 발전. 세 가지는 유럽을 30년 전쟁이라는 엄청한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는다. 1) 대항해시대 :유럽의 각 나라가 모두 힘을 가지게 된다 2) 인쇄술의 발전 : 교회의 성경 독점권을 약화시키고 신교를 주류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3) 신교: 가톨릭 교회의 땅과 재산을 탐하는 지역토호들에게 신교는 전쟁의 명분을 제공.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전쟁의 끝에서 유럽은 각각의 나라를 자율권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는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미국 대외전략의 근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루이 14세
태양왕을 자처한 루이 14세는 유럽 전체를 정복하고자 했으나, 베스트팔렌조약을 따르는 유럽 연합에 패배. 루이 14세의 패배는 프랑스혁명의 단초가 된다. 프랑스혁명(1789)은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혁명이었다. 프랑스를 전복한 혁명가들은 프랑스의 정신을 따르는 다른 국가 또한 무력으로 지원하겠다 선언한다. 폭력성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속성을 가지며, 프랑스혁명은 이후 전쟁들의 씨앗이 된다

나폴레옹 전쟁
프랑스혁명의 정신은 아이러니하게도 팽창주의자인 나폴레옹을 탄생시킨다. 나폴레옹은 법치주의를 내세워 법의 위대한 대리인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지배는 법이 하는 것이고, 본인은 대리인인 것.
 
러시아와 나폴레옹
러시아는 서양과 동양 모두로부터 침략받을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함. 러시아의 고난과 두려움은 살기 위해서는 팽창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이어진다. 나폴레옹은 유럽의 지배자가 되고자 했으나 러시아에 패배. 나폴레옹 전쟁은 자국인도 아닌 제국의 외국인 황제의 지배를 받아오던 각국의 국민들에게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빈협약
유럽을 전쟁에 빠트린 프랑스를 처리하기 위한 협약으로 오스트리아, 영국, 프로이센, 러시아가 협약.
 
1차 2차 세계대전과 악마적인 권력
1차 세계대전은 필연적인 전쟁은 아니었으나, 각국의 안 좋은 결정들이 모여 파국을 만든다. 전후 배상금 문제로 독일이 겪은 고통은 히틀러를 탄생시키고, 2차 대전을 낳는다. 악마적인 권력이 주는 매력적인 억압에 국민들이 빠져드는 상황은 세계사에서 종종 발생했던 일이며, 이들이 일으키는 재난을 막기 위해 다른 국가들은 합심하여 저지해야 한다.
 
독일과 유럽연합 
통일국가로서의 기간은 굉장히 짧지만, 독일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폭발력이 있으며, 다른 유럽국가들은 이를 두려워한다. 독일인의 특징은 굉장히 일사불란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장기집권하는 안정된 정권하에 일사불란하게 직진한다(일본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음)

독일의 이런 모습은 1,2차 세계대전 가운데서도, 전후 또다시 경제대국으로 부흥하는 과정에서도 돋보였으며, 그래서 다른 유럽국가들은 통일독일을 두려워한다. 유럽연합의 탄생은 독일의 통일을 계기로 이루어진 느슨한 연합체로 신성로마제국과 비슷한 면을 가진다.

이슬람

'다르 알 이슬람'
이슬람 민족들은 본디 유목민들로 거대한 제국을 이룬 적이 없었으나, 마호메트를 중심으로 최초로 중앙집권적 국가를 이루었다.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를 혼합된 재정일치 사회. 이슬람은 세계를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의 집)과 '다르 알 하르브'(전쟁의 영역)로 나눈다. 이슬람 국가 오스만은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비잔틴제국을 무너트리고 오스만 제국을 이룬다.   
이슬람으로 보편화된 세계
비이슬람권을 이슬람으로 포섭시키는 것을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며, 그 방법은 '마음으로', '말로', '손으로', '칼(지하드)로' 이행할 수 있다. 결국 이슬람은 이슬람으로 통일된 세계를 그린다. 하지만 수천 년의 역사에서 그 어떤 권력도, 그 어떤 종교도 보편주의를 이룬 바 없다
 
이슬람은 비이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슬람화 되지 않는 한 종교적으로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슬람의 영토를 확대시키는 것은 그들의 종교적 의무이며, 결코 은유가 아니다. 때문에 이슬람 영토를 침해하고 축소시킨 이스라엘과의 싸움은 성전이 된다.
 
시아파와 수니파
시아파는 마호메트의 직계자손들이 정통 계승자라는 입장이다. 수니파는 이후 네 번째 칼리프 대에 등장한 집권세력을 정통 계승자로 보는 입장이다.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는 늘 한걸음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슬람의 본원지인 메카를 품고 있는 국가로서 이슬람의 가치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시아파의 맹주 이란은 각국의 시아파 세력을 지원하여 수니파 국가들의 정당성을 약화시켜 중동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급진주의 단체들
시아파 급진주의 단체로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수니파 급진주의 단체로는 알카에다, 가자지구의 하마스, 시리아의 아이시스가 있다. 
 
페르시아 제국 - 이란
이란은 기원전 7세기~기원후 7세기까지 이어지는 페르시아 제국의 후신. 천년 제국 페르시아는 스스로를 왕 중의 왕으로 생각했으며, 스스로를 세계질서의 중심으로 생각. 페르시아는 자신들과 가까이에 있는 국가일수록 귀하고, 멀수록 천하게 여겼다. 페르시아는 알렉산더 대왕, 이슬람 군대, 몽골로부터 침략받았지만 문화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정신승리, 20세기에 미국은 석유를 노리고 이란에 팔레비 왕조를 수립했으나 결국 시아파 근본주의 호메이니가 집권.
 
9.11
이슬람의 관점에서 미국을 이슬람 세력을 억압하는 국가였으며 이는 2001년 911 사태로 이어진다.
 
이슬람에 대한 키신저의 견해
다분히 왜곡되어 있다.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한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스라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종교 팽창주의가 아니라 독립운동에 가깝지만, 키신저는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그 교리가 호전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만 강조한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미국이 세운 괴뢰정부였음도 언급하지 않는다. 키신저는 유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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