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영성

의식의 스펙트럼 - 켄 윌버

btpoint 2024. 5. 15. 13:52

켄 윌버의 첫 번째 책이자 대표작. 종교와 철학, 심리학이 말하는 의식과 깨달음을 현대적 시각에서 설명한다.
 
의식의 분화
태초의 우주에는 정신(합일의식)만이 존재했다. 여기서 어떠한 원인도 없이 자연과 유기체(생명)의 이원화가 발생한다. 우주로부터 분리된 유기체(생명)는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착각하고, 생존을 위한 정보처리도구로서 뇌를 발전시킨다.
 
가장 진보한 뇌를 가진 인간은 정보과 감정을 추상화하여 상징(언어체계, 숫자 등)에 기반한 인식체계를 만든다. 인간의 자기인식인 '자아'는 원시 생명체의 생존 본능이 추상화된 것이다.

소멸의 두려움과 분리된 의식은 자아로
하여금 생각속의 다른 조각, 더 나은 자아를 꿈꾸게 한다.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고통은 낳고 고통은 분열을 낳는다. 자아는 자신의 일부를 그림자로 억압하고, 가면 쓴 자아인 페르소나가 된다.

길 잃은 자아
자아는 이상적 자아의 미래를 기다리지만 일시적 만족과 고통을 반복할 뿐이다. 이미 고향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그는 늘 무언가를 찾고 있을 뿐,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자신을 성찰하고 의식의 귀환을 추구할 때, 인간의 인식체계는 견고한 장애물이 된다.인식체계와 그것이 만든 세계, 자기 자신이 바로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상징의 한계
인간의 사고는 상징의 한계에 제한된다. 우리 뇌는 실제의 아주 일부만을 상징과 부정확한 이미지로 압축하여 저장한다. 생각이란 불완전한 상징을 바탕으로 상징 위에 상징을 얹는 것이다. 
 
시간은 변화의 상징이자 기록이다. 시계는 태양을 공전하고 자전하는 지구의 변화를 기록할 뿐이며, 머리속의 과거와 상징속의 미래는 실제가 아닌 흔적이다. 실제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할 뿐이다. 하지만 과거에 침작하고 미래로 달리는 자아는 상징속에 머물 뿐, 실제하는 오늘을 보지 못한다.
 
이원성과 분리
이원성 또한 사고의 근원적 한계다. 이원성으로 본질을 추구하는 것은, 동시에 비본질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이원화된 양극은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를 강화한다.
 
나와 자연을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는 원초적 경계선은, 피부 안의 나와 피부 밖의 세계다. 하지만 우리 몸은 피부밖 공기의 도움없이는 몇분도 지속이 불가능하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 또한 모두 피부밖인 물과 공기, 동식물과 땅으로부터 온 것이다. 피부는 경계선이 아니라 연결선이지만 인식과 감각의 한계로 우리는 분리되어 있다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식이 만든 장애물들은 생각을 통해 넘어설 수 없다. 이원성에 갇히고 상징에 제한된 자아의 세계는 진실을 가리는 장막과 같다. 깨달음은 자아가 의지를 내어 풀려할수록 풀리지 않는 난제가 된다.
 
켄 윌버는 페르소나가 외면한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귀환을 시작하라 말한다. 우리가 싫어하고 외면했던 것들을 다시 우리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임과 깨어있음을 통해 우리는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나누었던 생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긍정과 부정을 모두 받아들일 때 페르소나는 설 자리를 잃는다. 미래로 떠나야 할 이유를 잃을 때 자아는 오늘로 귀환한다. 그때 우리 자신이었으나 감추어져왔던 본래 진면목은 그 힘을 되찾고, 야생마처럼 날뛰던 자아는 길들여진다.
 
우리가 소외시켜왔던 마음의 그림자를 껴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니 사실 우리는 우주의 본질로부터 떠나온 적이 없고, 떠날 수도 없다. 환상 속에서 깨어나 진실을 마주할 때,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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