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가 쓴 반도체 책. 반도체의 역사가 곧 현대사임을 알려준다.
소련과의 냉전 - 반도체의 태동
반도체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뉴욕타임즈는 기계 뇌세포가 발명되었다는 기사를 썼다 한다. 태동기의 반도체는 군사력, 특히 물량에서 소련과 중국을 당해낼 수 없었던 미국의 비대칭 군사전략이었다. 반도체를 통해 미국은 미사일의 명중률을 높이려 했으며, 우주발사체의 기반기술로 활용했다.
실리콘밸리의 탄생
군사목적으로 쓰이던 반도체를 인텔의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는 상업적 용도로 성공시켰다. 라디오 등 각종 기계장치에 반도체는 혁명적인 발전을 불러일으켰으며, 상업적 성공은 실리콘밸리의 탄생을 이끌었다.
일본의 기적, 실리콘밸리의 굴욕
2차대전후 미국은 일본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일본 경제를 지원한다. 실리콘밸리는 일본에 반도체 생산기술을 전수하고, 일본반도체를 수입해 준다. 처음에는 찰칵이라고 무시당하던 일본(실리콘밸리에 견학 와 사진 찍기 바쁘다 하여)은, 놀라운 기술발전, 그리고 저렴한 노동력으로 실리콘밸리를 전복시킨다. 일본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워크맨 등 반도체를 활용한 신제품, 자동차산업 등으로 미국 경제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른다.
미국의 반격과 소련의 몰락
일본에 밀려 망해가던 인텔은 PC산업의 성공을 통해 CPU로 부활한다. 메모리 반도체 또한 신생업체 마이크론을 통해 다시 일어선다. 미국이 일본 등 우방국과 함께 이룬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는 이미 소련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한다. 90년 걸프전을 통해 미국은 전자산업과 접목된 첨단무기들을 선보이고, 더 이상 소련은 미국의 경쟁상대가 아니게 된다.
일본 대신 미국이 택한 대만과 한국, 네덜란드
일본의 성장에 놀란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기위해 한국과 대만을 지원한다. 대만은 국가적으로 반도체를 육성하기 위해 인텔에서 모리스 창을 스카우트하고 TSMC를 만든다. 실리콘밸리 출신들로 경영진을 채운 TSMC는 미국의 지원아래 세계최고의 반도체 팹으로 도약한다. 한국 역시 마이크론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1위 메모리 생산국으로 도약한다. 리소그래피(회로 인쇄기술)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이 승자가 되었지만, ASML는 대부분의 부품을 외부에서 공급받으며, 그중 핵심기술은 미국과 독일에 있다.
중국의 도전
중국은 소련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국 반도체를 베끼려 했으나 문화혁명 등으로 끔찍한 실패를 겪는다. 하지만 등소평의 등장 이후로 중국은 화웨이를 중심으로 급격한 기술 발전을 이룬다. 산업기술뿐만 아니라 초음속 마시일 등 국방기술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한다. 불안해진 미국은 일본 그리고 우방국과 연합하여 중국의 기술발전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반도체 핵심장비와 제품 도입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중국이 경쟁자이자 주요 판매처라는 점에서 딜레마가 있다. 중국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대응하면 미국 또한 큰 피해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까지 중국은 반격하고 있지 않지만 과연 언제까지나 그럴까?
대만 딜레마
메모리 반도체는 미국 마이크론이 있지만 하이앤드 비메모리 반도체 팹은 현시점에서 사실상 대만 독점에 가깝다. 어느날 아침 대만 공장에 미사일 하나가 날아들면 전 세계의 경제, 그리고 미국의 국방시스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국의 대만공격은 치명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으로 빼앗은 공장을 중국이 100% 활용할 수도 없기에 기술 측면에서는 중국에 큰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반도체의 미래
책을 읽으며 미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이 세상을 지배해 온 힘의 근간에는 반도체 기술이 있으며, 실리콘밸리 네트워크가 있다. 현재 반도체 헤게모니는 미국과 일본 연합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그들의 기술과 장비 없이는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핵심기술을 가진 이들에 비해 한국은 생산기지의 역할에 그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1위이지만 독점이 아니고,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대만이 독점하고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 팹에서 보다 성과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