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선진국들, 특히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금융서비스에 불편을 느끼는 일이 없다. 메신저에서 몇 번 클릭으로 돈을 보낼 수 있고, 계좌개설도 10분이면 가능하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다. 신용카드를 가볍게 가져다 대면 끝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비트코인, 블록체인이란 오히려 느리고 번거로운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오늘날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튤립버블처럼 사라졌어야 마땅한 유행이 아니다. 세계 7번째 시총규모의 자산이고, 곧 미국이 준비통화로 지정할 자산이다. 비트코인의 어떤 점이 이런 가치를 만들어냈을까?
선진국 시민들이 누리는 편리한 금융서비스는 '신뢰'에 기반하고 있다. 사람들은 은행을 믿고 은행의 전산시스템을 믿는다. 사람들은 인터넷 프로토콜을 믿고, 개인정보보안, 그리고 인증서가 유출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그러한 '믿음' 위에서 우리는 극도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많은 불신과 부조리가 있다. 겉보기엔 깨끗하고 평화로운 선진사회에도 수많은 담합과 부정행위들이 감춰져있다. 전쟁이 터지면 국가는 국민을 믿지 못하기에 개인들의 자산을 동결한다. 개인들은 국가를 믿지 못해 자산을 은닉한다.
후진국이나 독재국가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부조리하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번 부자와 권력자들은 언젠가 자신의 치부가 탄로나서, 혹은 권력을 뺏겨서 자산이 몰수될 것을 두려워한다. 부자들은 국가를 믿지 못하기에 자산을 지하창고에 금이나 달러로 저장해 놓는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회에서 비트코인은 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불신이 있다. 비트코인은 '불신'을 먹고 산다. 비트코인은 금보다, 달러뭉치보다 가볍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당신이 구린구석이 있는 부자라면 비트코인이 필요하다. 당신은 깨끗하더라도 어느 날 악랄한 누군가 국가를 지배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되기 시작했다면 비트코인이 필요하다. 불신과 두려움을 원료로 비트코인은 오늘도 자란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얼마나 작은가? (0) | 2024.09.26 |
---|